우리 국강고고학연구소는 2010년 12월 2일에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설립되었으며, 동년 12월 27일 문화재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기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로고에서 보듯이 광개토대왕의 비에서 연구소명을 인용하였는데 우리의 유구한 문화유산 및 역사를 아끼고 지키고자 함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비영리재단법인으로서 문화유산의 조사, 연구, 보호 관리 및 그 활용을 통해 민족문화를 선양하고 문화 발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현재 강원도 춘천시 춘천로 249(효자3동 756-6)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학예연구실과 기획연구실 2실 체제로서 학예연구실에는 조사연구와 보존처리를, 기획연구실에서는 유물관리와 연구지원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설립 후 첫 번째 발굴조사는 사적 제195호 영릉(英陵 ; 세종대왕릉)과 영릉(寧陵 ; 효종대왕릉)의 능역으로서 1469년(예종1) 천장(遷葬) 당시의 참도(參道), 동·서측 어구(御溝), 금천교와 홍살문 위치, 연지 및 우물을 확인하여조선 왕릉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따른 보존관리계획의 일환으로서 능제의 원형을 밝히는데 기여하였습니다.
이후 포천에서 용정리 구석기유적, 홍천 하화계리 구석기유적, 포천 신평리 구석기유적 및 조선시대 가마, 화천 용암리 청동기유적, 춘천 천전리유적, 삼척 동막리 조선시대 가마, 양양 하월천리 조선시대 가마, 강릉 강문동 신라토성, 인제 부평리 구석기․제철유구 및 통일신라~조선시대 유구, 가평 읍내리 고려~조선시대 건물지 등을 조사하였으며, 현재는 서천 백제 건물지, 토기가마, 고려시대 가마, 개복사지 등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용정리 구석기유적에서는 흑요석제 유물을 비롯한 3,416의 석기가 출토되었으며, 발굴조사를 통해 5세기 말~6세기 전반에 해당되는 신라토성으로 밝혀진 강릉 강문동 신라토성은 문헌자료와 비교되어 우리나라 동해안 고대사 연구에 한 획을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천전리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및 석관묘 등 11기, 원삼국시대 주거지 2기, 삼국시대 주거지 1기 등 총 14기의 유구가 좁은 면적(643㎡)에 밀집되어 확인되면서 기존에 알려진 천전리 일대 유적의 규모와 가치를 가늠하게 하였습니다. 요즘 핫 이슈인 한국의 역사를 새롭게 복원할, 단연코 문화적인 내용면에서도 최대 규모라고 할 수 있는 중도 유적과도 연결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소양강 상류인 인제 부평리에서는 처음으로 흑요석 등의 석기제작터가 발견된 구석기유적이 발견ㆍ조사되면서과 인제 역사의 시작이 달라졌고, 더불어 발견되 통일신라에서 조선시대 이르는 제철유구, 건물지, 주거지 등의 유구가 확인되어 중요한 가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이후에도 서천 신검리유적, 옥천 이성산성, 충주 장미;산성, 하동 평사리유적, 울진 부구리유적, 동해 추암동유적, 춘천 율문리, 원주 법천사지, 삼척 포진성, 양양 진전사지 등 가치있는 발굴조사를 연이어 진행하여 왔습니다.
발굴조사 외에도 문화재 지표조사, 입회조사, 표본조사, 시굴조사를 통해 소중한 문화유산을 찾아 기록하고, 보존하고자 하였으며, 자세한 것은 조사 자료를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흔히 사실은 스스로 말한다고 하지만 잊혀진 역사는 살아있는 유적과 유물이 없이는 복원될 수 없고, 알 수도 없습니다.
우리 연구소는 이러한 문화유산의 기록을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통하여 과거의 기록을 찾아 내고, 그러한 사실을 접함에 있어 굴절되지 사실을 밝히기 위하여 문화재조사와 학술조사를 통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이 아닌 사실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고민을 더하겠으며, 이러한 과정이 더불어, 함께,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사회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